“그렇지요. ‘다섯 한 땅’은 해안선이 복잡하고 안쪽에 있어 오랫동안 관심 밖이었으나, 최근 빌트람 부족이 득세하여 거점으로 주목받게 된 겁니다. 겸사겸사 정복, 아니, 교류도 하면 좋은 일 아닙니까.”

제국 사람들은 여기를 덕수국이나 정원국이 아니라 다섯 한 땅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본토에서도 사장 된 아주 오래된 옛 지명이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제국인들은 아직도 그 지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다.

이경무는 세계 지도를 접어 품에 갈무리하며 물었다.

“출항은 언제 하는가?”

“배는 바람의 여신이 허락할 때 비로소 나갈 수 있는 법입니다.”

제국의 군함은 노를 젓는 방식이었기에 바람의 영향을 좀 덜 받긴 했으나, 장거리를 이동하려면 돛을 이용한 항해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알맞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갈 수 없었다.

“좋다. 기다리도록 하지.”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경무는 군단장의 관저로 안내되었다. 저번에 왔을 땐 천막이었는데, 지금은 석재와 목재를 섞은 커다란 저택이었다. 심지어 마당에는 분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식물도 있었다.

이경무는 그곳에서 지내며 제국의 문물을 익혔다. 읽고 쓰는 법, 새로운 개념과 어휘, 수학, 심지어 마도 공학까지.

물론 2주 정도 머물렀기에 모든 것에 통달할 수는 없었지만, 수박 겉핥기로나마 두루두루 익힐 수는 있었다.

마침내 세찬 동풍이 불자 이경무는 군함에 올랐고, 3척의 군함과 5척의 중형 선박의 호위를 받으며 암초를 피해 동쪽으로 떠났다. 인생 처음으로 육지를 떠나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물살을 가르는 소리, 노잡이들의 기합 소리, 돛이 펼쳐졌을 때 펄럭이는 소리. 끝도 없이 펼쳐져 눈을 탁 트이게 하는 출렁이는 푸른 빛깔.

그런 것들이 이경무의 가슴에 들어와 출렁였다. 거부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자신의 삶과 조상들의 삶까지 녹아있는 땅은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큰 배였기에 그렇게 심하게 요동치진 않았지만, 같이 따라온 수행원들은 뱃멀미하느라 초죽음 상태였다.

그런데 이틀째 되는 비제이뱃 순조롭게 항해하다가, 문젯거리가 닥쳤다.

“남서쪽에 빌트람 놈들이다!”

“노잡이들 위치로 이동해!”

“갑판장! 갑판장!”

이경무는 선실에 있다가 뭔 일인가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온통 푸른 바다뿐인데 저 멀리 작은 배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게 보였다.

제국의 군함에 비하면 거의 손톱만 한 크기밖에 안 되는데, 문제는 마치 벌떼처럼 엄청 숫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 배들은 멀리서 제국의 배들과 방향을 같이하며 따라왔다.